글 전체에서 풍기는 것은 밝음과 따뜻함이며 고향 들판의 흙 냄새 사람 냄새가 물씬하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악동들이 가득하다. 이제 40대 중년이 되어 버린 오늘의 기성세대가 60~70년대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악동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 하지만 결코 밉지 않은 악동들…… 이제 그들이 시공을 초월해서 살아 숨쉬며 우리들에게 손짓을 한다. 잊혀져 버린 기억 저 편의 아름답던 시절을 새록 떠오르게 하면서……
•비록 정식 등단을 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가 참으로 이 시절에 보기 드믄 이야기꾼이란 것을 알게 된다.
<책 앞에 쓴 글쓴이의 이야기>
사십이 넘어서 책을 한 권 썼더니 약력을 쓰라고 한다. 약력이라…. 생소한 용어다. 내게 무슨 내보일 만한 약력이 있었던가. 하기야 지나 보낸 세월의 길이가 만만치 않으니 굳이 쓰려고 한다면야 못 쓸 것은 없다. 물론 남들처럼 그럴듯한 걸 써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시답잖게 껍데기만 중언부언 써내봐야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1961년 3월, 그날의 그 포근했던 햇살 이야기나 고향 마을의 그 향그러운 들판에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으며, 아침마다 새로 태어나던 숲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던가, 그로인해 오늘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따뜻한가 따위를 약력으로 쓰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바에야 나는 차라리 형식적인 약력은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많이 배운 사람이다. 무려 45년을 배웠으면 많이 배웠다고 할 만 하지 않겠는가. 가방 속에 죽은 활자를 넣고 다니기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 있는 지식을 배웠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배운 것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었느냐다. 밥을 먹었으면 똥을 싸야 한다. 먹은 것을 잘 소화시켜 피와 살로 만들고 나머지는 걸러 똥으로 싸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밥을 먹고 밥을 그대로 싸려고 끙끙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더러운 똥을 싸지 말고 깨끗한 밥을 싸라고 소리친다. 나는 죽은 지식을 잔뜩 먹고 시커먼 활자들을 그대로 내지르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슴에 녹아 스미지 않은 관념적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되지 않는 학문은 몽땅 폐기시켜야 한다. 모든 지식의 목적은 행복이므로….
나는 사십이 넘을 때까지 글이라곤 써 본 적 없었다. 어느 날, 남들의 글을 무심히 읽다가 문득 내 안에서 강렬하게 솟구치는 무엇이 느껴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저 내 안의 치솟는 욕구가 내달리는대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얼마간 후엔 나의 생애 첫 작품이 탄생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책 첫머리에 실린 <명자네 살구나무>다. 이후 나의 글쓰기는 늘 이런 식이었다. 구태여 뭔가를 억지로 쓰려고 애쓰기보다는 그저 마음이 달리는 대로 내맡겨두는 식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재미있다, 따뜻하다”고 야단이다. “낄낄낄 하하하, 정신없이 웃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져 있다”고 한다.
나는 유쾌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어렵고 복잡한 글은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나는 밝고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리고 고향 들판의 흙 냄새같이 인공 향수가 섞이지 않은, 사람 냄새 물씬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다지 많은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발 앞에 놓인 행복은 걷어차면서 먼 곳에서 구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행복을 찾기가 어려울 뿐인 것이다.
나는 내 글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유쾌한 웃음 속에 밝음과 따뜻함을 선물하고 싶다. 이제는 잊혀져 가는, 아니 가슴 한 켠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좀체 꺼내보지 못해 기억에 희미해져 버린, 그러나 찬란하고 따뜻한 이야기들로 조금씩 식어 가는, 가슴마다 품고 있는 화롯불을 다시 지피고 싶다.